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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해동 (한양대)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46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54 - 189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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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주의와 개조론을 3ㆍ1운동과 연결해준 매개는 문화론이었다. 그런 점에서 3ㆍ1운동은 가히 ‘문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해도 좋았다. 특히 개항 이후 주로 일본을 경유하여 동아시아에 수용된 독일식 문화개념의 수용과 전파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보면, 3ㆍ1운동이 가진 ‘문화투쟁’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지는 바 있다. 이는 ‘문화론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는 시대적 변화였다. 이처럼 1920년대는 ‘문화의 시대’로서 자신의 문을 열어제치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문화주의’를 자신의 주지(主旨)로 삼음으로써 ‘문화운동’의 선봉을 자처하였다. 여기서는 ‘정치주의’ 문화연구를 제안하였던바, 그 핵심은 당대의 문화 혹은 문화론을 시대적 현실에 개입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1920년대의 문화 혹은 문화론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식민지적 우회전략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된다. 정치적 우회전략으로서의 문화 혹은 문화론은 두 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하나는 특수성으로 파악된 문화인데, 이는 곧바로 문화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이리하여 ‘운동으로서의 문화’가 등장하였는데, 이것은 특수성을 확인하기 위한 문화의 전략이었다. 다른 하나는 부문성으로 파악된 문화인데, 이는 다양한 서브 컬쳐와 일상적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드러났다.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은 문화가 부문성을 넘어 전체성을 확보하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두 과정이 ‘정치주의적 문화연구’가 취하는 전략을 통해 확보할 수 있게 된 문화의 시대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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